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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aas

사람

 

세르바스는 눈을 떴다. 불면증 탓에 지난 밤에는 푹 잠들지는 못했으나 기상 직후의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눈 앞의 세계는 맑았다. 오늘의 컨디션은 좋았다. 시각을 확보하는데 무리가 없어서, 안경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세르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를 열었다. 방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세르바스의 책꽂이에는, 화법과 군사술 그리고 처세에 대한 서적들로 책 냄새가 났다. 한 때 즐겨 읽었었던 역사 서적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발코니 너머에는, 한 때 세르바스가 꿈꾸던 세계가 그 곳에 있었다. 인페로다의 혁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번영한 나라와 평화로운 시대. 민생을 살피며 올바른 정치를 꾀하는 정치가들. 혁명의 성공 이후의 이야기는, 그 것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세르바스는 가능한 세계의 관찰자로서 조용히 관망하고 싶었다. 시대를 즐기는 것은 격변하는 혁명기를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그는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바람이었다.

 

변혁은 또 다른 변혁을 부른다. 더 많은 개혁과 그를 위한 정치적인 수완. 더 커다란 권력과 혁명으로 인하여 쟁취하게 된 명예. 그 것들을 양분삼아 인페로다의 땅 위에 새로운 왕국은 자라났다. 뿌리 없이. 거기에는 근본도 없었다. 또 다른 왕국이 세워졌다. 그들만의 논리에 따라, 원리원칙따위는 무시한 자신이 새로운 왕국의 주인이라 명명하는 자들이 어둠속에는 늘 많았다. 많은 사람들의 혈액을 먹고, 살점을 뜯어먹고. 혁명 이후 수립된 정부는 늘 불안했다. 공공연한 전투는 없었으나 사병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치열한 뒷세계의 싸움만이 남았다. 세르바스가 불면증을 얻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혁명으로 변한 신변이 안전하지 못하여 암살의 위협에 시달린 것도 있다. 불면증으로 인하여 피로의 누적이 쉬워졌으나, 여전히 세르바스의 몸 안에는 생기가 넘쳤다.

 

혁명 이후 이어 나갈 생이란 건 고작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생의 답을 얻기 위하여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이 세계의 끝에서, 반대쪽의 끝까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는 관찰자라면, 처음으로 세웠었던 목적이 약간 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세르바스는 생각했다. 세르바스는 언변을 다듬고 정치 수완을 가다듬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혁명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르바스의 언변에 많은 이들은 환호했다. 세르바스는 구왕가의 추방 이후 생각이 나지 않을 횟수만큼 지저분한 짓을 했었고 방해되는 것은 가차없이 제거했다. 정치적으로 방해가 되는 자들이 어떤식으로 물 아래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는 매일 밤 파악하고 연구했다.

 

지금 시대의 원리원칙이란, 오로지 혁명 직후의 정치판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혼란한 세태에 대한 힘의 논리는, 세르바스가 즐겨 읽곤 하던 역사서적에는 적혀있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 다시 한번 주어진 다시는 없을 기회였다. 성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르바스는 생각을 마무리지었다. 바람이 불어서, 혁명 이후 오래도록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오늘 역시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느슨하게 묶어둘 예정이었다.

 

세르바스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품 안의 무기를 쥐었다. 그러나 낯익은 소리를 가진 발걸음이다. 이런식으로 걷는 것은 역시, 그 분이겠지. 다시 손을 떼었고 뒤를 돌아보았다. 세르바스는 예를 갖추고 무릎을 꿇었다.

 

"나의 왕이시여."

 

그 곳에는, 라울이 있었다. 앞으로 모든 것을 각오하고서, 어떤 일을 벌인다고 해도 세르바스가 지켜나갈 새로운 왕가의 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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