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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vis

유월

​<회귀>

짧은 총성이 낡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흔들었다. 총탄이 꿰뚫고 지나간 와인병의 파편이 대리석 바닥 위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클로비스는 눈 아래에 묻은 와인을 슬쩍 닦아내며 쓰러진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영해 들어온 달빛이 클로비스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상대는 와인병의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줄도 모른 채 몸을 설설 뒤로 내빼며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빌었다. 살려만 주시면 뭐, 뭐든지, 다, 다시 한 번 충성을…. 어깨가 지나치게 자주 떨리는 탓에 상대는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클로비스는 방아쇠를 매만지며 상대를 훑듯이 내려다보았다. 한 발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옷에는 군데군데 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설익은 와인의 쌉싸름한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다시 한 번. 클로비스가 낮은 목소리로 상대의 말을 되뇌었다. 말꼬리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클로비스는 자신이 지상에 막 발을 내디뎠던 며칠 전의 기억을 무심코 떠올렸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던 순간. 자신이 죽어 있던 그 기간 동안 세계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해야만 하는 곳이 이 세계였으므로. 돌아갈 곳이 남아 있을까, 하는 막연한 물음과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답 없는 불안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걸음의 종착에는 기억의 파편이 있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장소. 클로비스는 그곳에 무사히 돌아왔다.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는 여전히 어깨를 떨며 짧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로 용서를 구했다. 클로비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상한 안도를 느꼈다.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안도. 세계의 겉은 조금 바뀌었을지라도 그 속은 아직도 그대로라는 눈앞의 현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초인 조직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힘을 헛되이 낭비하는 자는 클로비스가 죽기 전에도 있었고 다시 살게 된 후에도 존재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허울뿐인 용서를 구하는 상대처럼. 클로비스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며 상대의 목소리를 뒤덮었다. 클로비스는 총구를 상대에게 겨눴다. 저런 걸 망연자실한 표정이라고 하던가. 잊은 것 같던 단어를 기억 위로 끌어올리며 방아쇠 위에 손을 올렸다.

“모든 것은 대선이 될 세계를 위해서.”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깔끔한 총성 뒤로 적막이 흘렀다. 바닥에 있던 파편이 드문드문 붉게 물들었다. 클로비스는 상대의 맥박이 끊긴 것을 확인한 뒤 총에서 한 번 더 탄피를 빼냈다. 와인인지 피인지 모를 자국 위로 탄피가 떨어졌다.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낡긴 했으나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해야 하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이 세계와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다행히 아직 변하지 않은 이 장소. 애매한 간극 같았으나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계가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인 일 일지도 몰랐다. 다시 한 번 살아갈 여지가 남아 있었다. 다시 한 번. 나의 정의를 위해. 우리의 정의를 위해.

다시 한 번. 클로비스의 목소리가 적막 속에서 낮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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