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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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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단지 감정 없는 인형일 뿐, 표정도 반응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그것‘은 태양 빛조차 들지 않는 망령들의 싸움터에 무척이나 걸맞았다. 감정도 체온도 심지어는 자아조차 가지지 못한 존재, 나의 지시자.

조잡한 인형의 눈동자에는 그 흔한 생기조차 깃들어있지 않았다.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면 제드는 가끔 소름이 돋는다.

 

‘제드.’

 

제드는 단순한 이름조차 희미하게 기억되었다. 다만 그 인형이 자신을 그렇게 불렀기에 스스로 이름이 제드라고 어림짐작할 뿐이다. 걷는 법도 먹는 법도 기본적인 지식은 떠올랐음에도 본인에 대한 기억만 먹물이 퍼진 물처럼 거뭇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인형과 기억을 잃어버린 망령 어딘가 망가진 두 개의 불량품, 이 둘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의 목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그것’이 망령의 이름을 입에 담을 때면 제드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었다.

 

 

“인형 주제에.”

 

 

기억도 없으면서 본능적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인형에게는 감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부에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럴 터였다. 인형에게는 감정이 없었다. 이따금 보이는 행동은 인간의 행동을 모방한 가짜일 뿐 진짜가 될 수는 없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시자는 변해갔다.

 

 

“와 대박! 세이프! 출책했다!”

“망할 인터넷 일해라! 일해!”

 

 

여전히 인형의 눈은 싸구려 플라스틱이고 몸과 팔다리는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그것’이 종종 인간으로 보일 때가 생겨났다.

 

인간처럼 제드를 걱정하고

인간처럼 제드를 향해 웃었으며

인간처럼 제드를 다독였다.

 

도니타보다도 쉐리보다도 ‘그것’은 완벽하게 인간을 모방하는 데 성공한다. 제드는 그렇게 판단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여자가 널 버린 것도 그 사람들이 죽은 것도. 다 네 탓이 아니야.”

 

 

찢어진 페이지가 맞춰지듯 텅 비어 버린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제드가 웃을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낯설고 익숙한 그 기억들이 제드를 괴롭게 만든다. 그 시간에 ‘그것’은 제드에게 다가와 그의 곁을 지켰다.

성녀의 힘을 조금 담은 그녀의 모조품, 귀여운 인형의 탈을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것’이 제드는 싫었다. 그와 모순되게 자신을 떠나지 않는 ‘그것’에 안심하고 만다. 그래서 자신의 허리에도 오지 않는 작은 인형이 자신을 스스로 누나라고 칭해도 모르는 척 넘어가곤 했다.

희미한 온기도 존재하지 않는 이 손은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든다.

 

 

 

 

 

그런 어느날.

그날따라 지시자는 이상했다. 지시자는 언제나 이상해서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인형과 망령은 잠을 자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자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가끔 인형이 구동을 멈추는 순간이 존재했다. ‘그것’은 그 현상을 ‘로그아웃’이라고 불렀다.

그날은 그 ‘로그아웃’을 오래도록 하지 않았다. 그 좋아하는 전투도 하지 않고 한참을 제드 옆에 앉아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사랑의 포옹.”

“저리가! 떨어져! 이거 놔!”

 

 

보통의 인형이었다면 즐거운 표정으로 더 들러붙었을 텐데 지사자는 순순히 떨어진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제드와 다르게 지시자는 그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조금 부담스러워 제드가 고개를 돌려도 줄곧 그를 바라본다.

 

 

“나한테 할 말 있어?”

“응? 사랑해?”

“아니 그거 말고.”

 

 

제드의 물음에도 지시자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소중한 사람끼리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두 존재 사이에는 실재하는 그 무엇도 없다.

멈춰버린 지시자가 다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드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새롭게 부활한 그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던 지시자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다니는 지시자도 차디찬 바닥에 누워 더 이상 구동하지 않는다.

 

‘싫다.’

 

지시자가 싫었다.

 

 

‘싫다.’

 

친한 척 착한 척 자신을 이해하는 척 다가오는 지시자가 싫었다.

 

 

 

‘싫다.’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지시자가 싫었다.

 

 

 

 

‘밉다.’

 

자신을 버려버린 지시자가 미웠다.

 

 

그런데도 멈춰버린 지시자 옆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잠시 오랜 잠을 자고 있을 뿐이라고 믿고 싶어서 또다시 버려졌다 인정할 수 없다. 성장이 멈춘 제드의 부활을 지시자가 기다렸듯이 제드는 멈춰버린 인형의 곁을 지킨다.

 

 

 

 

 

2017년 08월 31일.

일본 ㈜ 株式会社Techway에서 개발하고 강남게임즈에서 배급하던 게임 하나가 서비스를 종료한다. 많은 유저들의 아쉬움에도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속되었던 서버가 닫혀버렸다.

특히 죽어가는 게임을 살려보려 후원을 개시하던 한국의 유저들의 슬픔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애정하던 게임이 사라졌지만 유저들의 삶은 계속되었다. 언제나 같이 학교에 등교하고 회사에 출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지루하도록 같은 일상, 정확하게 그 게임이 종료된 2년 후에 한 서버가 열렸다.

 

서버의 이름은 https://unlight.app/

익숙한 알파벳에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누른다.

 

[딸깍.]

 

2년전 거의 매일같이 들려오던 BGM이 당신의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어떤 인형이 잠든 모습의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당신을 본떠 만든 지시자라는 인형과 매우 흡사하다. 복잡한 한자들이 난무하지만 ‘당신‘은 이게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이름으로 다시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아주 그리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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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__]

 

[relia_]

 

 

 

 

 

 

제드가 곁을 지키던 지시자의 몸이 사라진다. 바위가 바람에 풍토 되어 부서지는 모습같이 지시자의 몸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사라지는 작은 몸뚱이를 잡으려 손을 뻗어봤으나 소년의 손에는 먼지 한줌 잡히지 않는다. 이미 각오한 일임에도 쉽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볼 것만 같았지만 이 순간 모든 게 허무해졌다.

공허함이 턱밑까지 차올라 숨을 옥죄어온다. 덕분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제드?”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제드의 머릿속을 울렸다. 아주 오래전 처음 마주했던 그때 그 모습으로 지시자는 제드 앞에 나타났다. 오랜 시간동안 움직이지 않는 지시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렇지만 제드는 그 어떤 말도 지시자에게 할 수 없었다.

 

 

“으아. 내가 잘못했어.”

 

 

제드의 반도 안오는 짧은 다리로 지시자가 달려와 그의 품에 안긴다.

 

 

“그러니 울지마. 응?”

 

 

뚝- 뚝- 투명한 액체가 소년의 뺨을 타고 아래로 하강했다. 잔뜩 젖어버린 분홍빛 눈동자는 부서질 듯 흔들린다. 손을 뻗어 닦아주고 싶었으나 손이 제드의 얼굴까지 닿지 않는다. 짧은 팔로 허우적거릴 무렵 누군가의 팔이 작은 지시자를 감싸 안았다.

 

 

“어서와.”

 

 

“기다렸어.”

 

 

“나의 지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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