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an
사람
무엇을 보았는가?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면 이후의 인생에서는, 어떤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질문에, 미리안은 짧게 대답하였다. 그 대답에는 고민도 망설임 역시 없었다. 대답해두고 나서 생각해보아도, 미리안은 다른 이야기를 쉽사리 덧붙이지 못했다. 여타의 수식어는 붙지 않는다. 미리안은 말을 꾸며내는 일도, 빙빙 돌려 말하기 역시 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을 깊게 하는 것만큼은 그럭저럭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전 생애와 성유계에서의 탐색에 이르기까지, 미리안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능성을 증폭시킬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그간 미리안은 가능성을 증폭시키기 위하여 무수히 많은 것들을 희생시켰다. 그 자체를 악행이라 여길 위인은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론을 조금만 더 일찍 얻었더라면, 하다 못해서 선택을 조금 더 잘했더라면. 이제 와서 후회를 하기에는, 다소 짧은 삶이었다. 그간 벌여둔 일들이 많아 뒷 정리를 하기에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다. 미리안은 그가 벌인 일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말재간이 좋지 못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설명하는 것보다 낫다. 너는 보기만 하면 된다.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다. 나 또는 우리가 보여줄 미래에 너는 틀림없이 만족할 것이다. 그 곳에는 소용돌이가 없고, 죽음과도 거리가 멀다. 건강한 가족과 만날 수 있는 미래다. 내가 보았었던, 케이오시움이 약속해 준 가능성에 대한 증명을 너는 직접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레지멘트도 없었던 것이고, 소용돌이와 싸움을 하던 그 오랜 세월과 희생들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무슨 단어를 들어 설명해보아야 너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보여줄 따름이다. 그 일만이 최선이다. 우리가 그렸었던 미래를.
...모든 기억을 되찾은 미리안은 레타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다. 기억속의 모습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다. 건강하게 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레타의 얼굴을 성유계에서 보는 결론이 날 줄 알았더라면 그 동안 일상적으로 해왔었던 선택을 조금 더 현명하게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제는 행동의 결과에 대한 답변을 이제 어느 정도 알아내었으니, 가능성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겠지만 최소한 전 삶보다는 향상시킬 수 있다. 자신은 고작 그 정도밖에 그릇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미리안의 성미에는 맞지 않았다.
다음 번의 삶에서는 다른 가능성을 추구하여 볼 것이다. 미리안은 스스로의 선택을, 지난 번의 선택보다 조금 더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낼 자신이 생겼다. 만약 필요하다면 이러한 선택지를 알고 있을 동료들과도 협조할 수 있다. 전 생애에서는 미리안에게 그다지 협조적으로 굴지 않았던 동료들이었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래줄 의사가 있을지 모른다. 한 번을 겪었으니 이미 절반은 해결이 된 셈이다. 미리안은 마음을 넓게 먹어보기로 결심했다. 다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더 잘 해낼 수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는 것은 곧 그런 의미였다.
그런 마음을 품은 채로, 그는 지상으로 부활했다.
많은 것들을 스치고 지나간 그의 곁에는 성유계에서의 함께 행동했던 로쏘가 있었다. 둘은 대화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미리안은 로쏘의 내면이 부활 이후 어떤 마음을 품었을지 깊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미리안의 눈에 비춰지는 로쏘의 모습 그 자체는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미리안은 부활 이후의 로쏘를 향해 버릇처럼 말했다.
“...우리의 선택을 한낱 흥미거리로 만들지 마라.”
그 대답에 로쏘는 어떤 말을 들려주었는가는, 아직까지 알려져있지 않다.

